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에 가다
지난 6월 28일, 부평구입주자대표회의 연합회 주관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현장 탐방이 진행됐다. 이번 방문에는 부평구 각 아파트 대표 32명이 참여했으며, 긴장과 경건함이 교차하는 최전방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 철원행 대신 선택된 길, 판문점을 향하다
기자는 애초 이날 철원 금학산 산행을 계획했지만, 며칠 전 입주자대표회장으로부터 “판문점 방문 신원조회가 완료되어 화요일에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고 일정을 변경했다.
“한번쯤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산행 계획은 단숨에 뒤로 밀렸다.”
그러나 출발 전, 철원 지역 모 부대에서 발생한 병사 총기 난사 사건이 알려지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꽃도 피워보지 못한 젊은 장병들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소식을 접하자, 두 아들을 군에 보냈던 아버지로서 가슴이 먹먹했다. “아무리 세상이 말세라 해도 저러면 안 된다.” 그들의 영전에 마음으로 묵념을 올리며 발길을 판문점으로 돌렸다.
■ 긴장감 속으로 – 자유로를 달리다
이날 오전 7시 30분, 부평구청 앞에서 출발한 버스는 자유로를 따라 북으로 향했다. 자유로 휴게소에서 짧은 휴식을 취한 뒤, 오전 10시 30분까지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에 도착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훤히 뚫린 자유로를 달려 도착한곳, 검문소가 나타났다. 헌병이 차량에 올라 주민등록증을 일일이 확인하며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곳을 지나면 곧 남북이 대치하는 최전방이다.
■ 미루나무 사건의 현장, 캠프 보니파스
캠프 보니파스는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의 ‘도끼 만행 사건’ 당시 희생된 미군 장교 보니파스 대위의 이름을 딴 부대다. 판문점에 들어가기 전 모든 방문객은 이곳에서 신원 재확인과 소지품 검사를 받고, 이어 영상교육관으로 이동한다. 영상교육관에서는 JSA의 설치 배경과 역사, 그리고 방문객이 반드시 지켜야 할 행동수칙을 교육받았다.
교육을 진행한 인상 깊은 인물이 있었다. 영어와 한국어를 능숙히 오가며 설명을 이어간 이는 송상열 상병. 그의 또렷한 발음과 침착한 진행은 마치 전문 아나운서를 연상케 했다. “국민 여러분! 서부전선은 저희가 철통같이 지키겠습니다. 편안한 여행 되십시오.” 송 상병의 마지막 멘트가 울려 퍼지자 교육장 안은 잠시 정적에 잠겼다. 모두의 가슴속에 국방의 무게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 긴장과 평화의 경계, 판문점
교육을 마친 일행은 곧 공동경비구역으로 이동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이지만, 그 뒤편으로 보이는 북한 땅은 고요하고 정지된 듯했다. 군사분계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북이 맞닿아 있는 이곳은, 평화와 긴장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분단현장’이었다. 파란색 건물 사이로 보이는 판문각과 군사분계선, 그리고 경계 근무 중인 병사들의 모습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번 판문점 탐방은 단순한 견학이 아니었다. 한때 같은 민족이 총부리를 맞댔던 장소에서, 우리는 ‘평화’가 얼마나 소중하고, 또 얼마나 쉽게 위태로워질 수 있는지를 실감했다. 기자는 이날의 현장을 돌아보며, 최근 발생한 군 부대 총기사건으로 희생된 젊은 병사들과 그 가족들을 떠올렸다. “전우를 잃고 움츠러든 병사들,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부모님들… 그들의 슬픔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평화다”
판문점에서의 하루는 짧았지만, 그 여운은 길었다. 군사분계선 위에 선 채 바라본 북녘의 적막함은,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서부전선은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담긴 병사들의 사명감은 곧 이 땅의 안전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사진] 캠프 보니파스 전경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파란색 회담장 / 대성동 자유의 마을 전경
[취재·글 = 윤도균 기자]
등록일 : 2025-11-11 20:31:23조회 : 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