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궁녀 전설의 낙화암을 찾아서...
그런데 마침 그 꿈을 실현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 그것은 다름아닌 2017년 4월 2일(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 시목리에 위치한 여강재에서 “파평윤씨 태위공 12世?諱 安庇외 5位‘분에 대한 春享祭을 모시는 날이라 종친 6명과 함께 서울에서 승합차를 랜트해 春亨祭에 참석 했다. 현지에 도착하니 10시 반이다.
예정보다 조금 이른 10시 40분부터 조상님 6위에 대한 춘형제를 모시고 나니 11시 반이다. 각지에서 춘형제에 참석한 타 종친들은 모두 점심 식사를 하시는데, 우리 일행은 서둘러 집행부에 인사를 드리고 여강제를 떠난다.
그것은 바로 내가 그렇게 꿈에서도 가보고 싶어했던 부여, ‘삼천궁녀의 전설이 전해오는 낙화암’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부여에 도착하니 오후 1시 반이다. 서둘러 궁남지 인근에서 종친들과 함께 이고장의 소문난 연잎밥에 낮술도 한잔 걸치고 곧바로 낙화암매표소(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 이동해 낙화암 탐방에 나선다.
백제의 전설이 전해오는 낙화암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 있는 바위 절벽에 우뚝선 정자가 낙화암(百花巖)이다. 낙화암은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될 때,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이 전설로 낙화암이라는 꽃답고 애절한 이름을 얻었지만, [삼국유사]에는 타사암(墮死岩-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백제 성왕이 국가 중흥의 원대한 꿈을 펼치려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는 비운을 맞기도 하였으나, 위덕왕ㆍ무왕ㆍ의자왕에 이르는 동안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에 신라는 단독으로 백제에 대항하기가 어려워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대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백제는 국운을 다했던지 의자왕도 정사를 소홀히 하고, 나라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의자왕 20년(660) 사비성은 신라ㆍ당나라 연합군에게 함락되고, 성내에 살던 궁녀와 도성에 남은 여인들은 부소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침략군이 부소산성까지 몰려들자, 백제 여인들은 적군에게 잡혀가 치욕스러운 삶을 사느니보다 차라리 푸른 강물에 몸을 던져 무너지는 국운과 함께 목숨을 깨끗이 버리는 길을 택했다.
이처럼 여자의 정조를 생명보다 더 소중히 하고, 백제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백제 여인들의 충절과 넋이 어린 곳이 바로 낙화암이다. 바위 절벽에 새겨진 ‘낙화암(落花巖)’이라는 글씨는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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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7-04-04 11:56:12조회 : 2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