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지기 전우(戰友)와 함께 오른 인천의 진산 계양산 395m
계양산은 해발 395m로 인천을 대표하는 진산(鎭山)이자 주산(主山)이다. 계양산 동쪽 기슭 봉우리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계양산성(桂陽山城)이 있고, 서쪽으로는 조선 고종 20년(1883년)에 해안방비를 위해 부평고을 주민들이 참여하여 축조한 중심성(衆心城)이 징매이고개(景明峴) 능선을 따라 걸쳐 있었다.
계양산이란 이름은 지명의 변천에 따라 고려 수주 때에는 수주악(樹州岳), 안남도호부 때에는 안남산(安南山), 계양도호부 때에는 계양산(桂陽山)으로 부르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한 때는 아남산(阿南山), 경명산(景明山)이라고도 하였다. 계양산의 산명 유래는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1944년 1월 8일 인천시 최초의 도시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결정되고, 그 후 계양산은 시지정 제1호 공원이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은 진산 또는 안남산(安南山)이라고도 했다.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이 서식하여 계양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으나, 이들 나무는 인천 일대에 자생하지 않는 종이어서, 실제로는 계양도호부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인천시에서 가장 높은 산인 이 산의 동쪽 능선에 있는 계양산성(桂陽山城)은 삼국 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일명 고산성(古山城)으로 불린다. 축조 형식은 지형 분류상 산정식(山頂式), 방법상 내탁식(內托式)에 안쪽은 불규칙한 할석(割石)으로 쌓았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방성곽조〉(關防成廓條)에 의하면 둘레가 1937보(步)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대부분의 성곽이 훼손된 상태이다.
집수정 바닥에서 《논어》 〈공야장〉의 주요 내용이 기록된 목간이 출토 되었는데, 5각형의 각 면에 《논어》의 구절이 먹으로 쓰여 있다. 한성백제 시기의 유물로 한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목간으로 추정된다. 1944년 1월 8일 조선총독부가 관보 제13호로 계양산 전체를 공원으로 지정하였다. 1988년에 인천시 시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
계양산의 높이는 395m로 초보 등산객이 오르기에 적합한 규모이다. 인천지하철 1호선 계산역에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도보로 5분 거리이다. 등산로는 입구의 연무정에서 시작한다. 중간에 팔각정이 있으며, 하느재고개를 지나 경사진 계단을 오르면 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정상에는 계양정[6]을 비롯하여 표지석 및 망원경들이 설치되어 있다.
날씨가 좋으면 정상에서 서쪽으로는 강화도-영종도, 북쪽으로 고양시, 남쪽으로 인천광역시까지 볼 수 있다. 주능선 등산로에는 그늘이 없어 더운 여름철보다는 봄철 산행지로 적합하다. [위키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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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9-09-28 10:44:06조회 : 1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