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접근권 공개 변론…“국가가 의무 방치” vs “꾸준히 개선 노력”
A 씨 등은 지난 2018년 국가가 20년이 넘도록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아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장애인 접근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 1998년 제정된 구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은 소매점의 범위를 '바닥면적의 합계가 300㎡(약 90평) 이상의 시설'로 규정했다. 시행령 규정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편의점 중 97% 이상이 의무에서 면제된다. 해당 시행령은 2022년이 돼서야 ‘바닥 면적 50㎡(액 15평) 이상’으로 강화됐다.
앞서 1심과 2심은 국가가 해당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고의나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날 공개 변론에서 원고 측은 국가가 24년간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것은 입법부작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 대리인 사단법인 두루 이주언 변호사는 “‘장애인등편의법’은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경사로와 같은 편의시설의 설치에 대한 기본 원칙을 정하고 접근권과 이에 따른 국가 의무를 명시한 것”이라며 “문제는 면적 300㎡ 이상에 이르는 소매점이 거의 없다는 것”임을 지적했다. 이어 “시행령이 만들어진 1998년부터 20여 년간 통계를 보면 0.1%에서 5% 남짓”이라며 “결국 쟁점 규정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하는 접근권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위헌·위법적인 규정은 제정 즉시 개선돼야 했다.”며 “시행령이 개정되는 데에는 통상 5개월에서 7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사건 규정은 개정되는 데 24년이 걸렸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국가가 부족하지만 장애인 접근권 향상을 위해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해왔다.”며 “이 사건 쟁점 규정과 관련해 구체적인 행정입법 부작위와 위법성, 고의나 과실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피고 측 대리인 정부법무공단 이산해 변호사는 “국가는 장애의 다양성 그리고 장애인 선택권을 중요하게 고려해 장애인 복지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을 확대했다.”며 “2024년까지 장애인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장애인등편의법’을 87차례나 개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에 해당하기 위해선 법령 등에 의한 작위 의무가 인정돼야 하고 그 부작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상실해 현저히 불합리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접근권 강화와 관련해 여러 법률이 시행됐는데 주요한 것이 ‘장애인 활동지원법’이다.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거나 사회생활이 어려운 지체, 정신 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 등을 지원하는 법”이라며 “지체장애인의 경우 소매점을 이용하는데 구매를 요청하거나 아니면 직접 이동하는데 보조를 받거나 할 수 있으며 온라인 구매 등 여러 대체 수단이 마련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오경미 대법관은 “온라인 주문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면서 온라인만 하라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바닥면적 300㎡ 이상 시설이 실제로 전국에 얼마나 되는지 양쪽에 물었다. 원고 측은 약 3%, 피고 측은 5%는 넘는다고 답했다.
조 대법원장은 피고 측을 향해 “법에서 요구하는 시설물에 대해 50% 이상이라도 해놓고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해야 한다.”며 “정부 주장대로 해도 5%대 접근성을 두고 시행령으로 우리가 할 바를 다했다고 주장하는 건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양측은 국가 배상 성립 여부를 놓고도 공방을 이어갔다.
원고 측 참고인으로 나선 김중권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접근권이 시행령에 의해 유명무실하게 된 이상 불이익이 구체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최소한 불법성의 확인을 위한 상징적 금액의 배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 참고인인 안병하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고의 접근권 침해로 인해 어떠한 현실적 손해가 발생했는지 주장과 증명이 없다.”면서 “정신적 손해는 규정이 개정되면서 회복됐다고 볼 여지가 있다, 행정입법 부작위와 원고들의 손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도 섣불리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최후 변론에서 정부 측 대리인은 “시행령 개정은 영세 소상공인에게 직접 부담을 주는 행위였다.”며 “국제적 기준을 보더라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년 공공시설 접근권 보장을 권고했고 2022년에야 모든 건축물을 대상으로 권고했다. 정부 노력이 크게 부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 대리인은 “제도에 따른 차별이자 행정입법 부작위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이라며 “무려 24년 동안 접근권을 형해화시킨 책임을 국가에 물어주기 바란다. 법원은 사회적 약자 마지막 보루”임을 상기시켰다.
대법원은 이날 공개 변론에서 나온 쟁점들을 검토해 최종 토론을 거쳐 선고할 방침이다. 판결 선고는 2~4개월 내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등록일 : 2024-11-06조회 : 32